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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숨겨진 소리 채집 및 분석

by 이코노박스 2025. 7. 9.

도시라는 거대한 악보, 소리를 기록하는 일

도시는 수많은 소리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공간이다. 자동차의 경적, 인파의 발걸음, 상점에서 나오는 음악, 지하철 진입 안내음까지. 우리는 매일같이 이 수많은 소리들을 듣고 있지만, 정작 그 속에 어떤 소리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도시의 소리를 하나씩 채집해 들어보면, 그 안에는 도시의 리듬, 시간, 역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오롯이 녹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어느 날부터 도시 산책을 하며 소리를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상한 소리나 독특한 음향을 담고자 했지만, 점차 그 소리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서울 종로의 한 오래된 골목에서는 매일 정각마다 울리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종은 70년대에 세워진 교회의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그 교회는 오랫동안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곳이었고, 종소리는 일종의 삶의 사이렌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소리 채집은 단순한 녹음 작업을 넘어서, 도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창을 열어준다. 소리를 통해 공간을 기억하게 되고, 그 공간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같이 특정 시간대에만 들리는 소리들은 그 시간에만 존재하는 감정을 동반한다. 건물 틈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정차한 트럭에서 들리는 엔진의 떨림,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등은 마치 도시가 자신만의 숨결을 내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시는 늘 바쁘고 소란스럽지만, 그 틈새에는 고요하고 섬세한 소리들이 숨어 있다. 우리가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이 소리들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도시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증거다. 나는 도시를 하나의 악보로 보고, 그 안에 존재하는 음표들을 찾아내고 기록해나가는 일에 점점 매료되었다.

도시의 숨겨진 소리 채집 및 분석

소리의 정체를 찾아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

채집된 소리를 다시 듣고 분석하는 과정은 하나의 탐정 놀이와도 같았다. 단순히 ‘어디서 들었는가’보다 ‘왜 그런 소리가 나는가’, ‘그 소리는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를 파고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공간의 과거와 현재를 엿보게 된다. 예를 들어 청계천 근처의 낡은 공장 부지에서 들리는 금속 끼익거리는 소리는 처음엔 그저 낡은 문짝의 소리로만 생각되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그 공장은 1960년대부터 가동되던 기계 공장이었고, 그 소리는 당시부터 변함없이 이어져온 설비의 작동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 감정적인 울림까지 전해준다. 도시가 가진 기억은 물리적인 건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감싸는 공기, 냄새, 그리고 소리에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는 무심한 기계음일지 모르지만, 어떤 이에게는 아버지가 일하던 공간에서 나던 익숙한 소리일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시각에 의존하여 공간을 기억하지만, 사실 청각은 더 오래, 더 깊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새벽 3시경 종로구의 한 시계탑에서 나는 벨소리를 채집한 적이 있다. 그것은 구청이 설치한 예전 방송장비의 일부였고,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장치였지만 여전히 전원이 연결되어 정각마다 작동하고 있었다. 이 소리는 근처 주민들에겐 공공의 시계 역할을 했고, 수십 년간 바뀌지 않은 생활 리듬의 중심이었다.

이처럼 도시 소리를 분석한다는 것은 단순히 음향의 주파수나 지속시간을 측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삶의 흔적과 정서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감동과 이야기를 전해준다. 도시 소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역사서이며,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잠들어 있던 도시의 기억을 깨우는 해설자가 된다.

들리지 않던 것을 듣는 감각을 깨우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소리들은 대부분 배경음으로 인식된다. 익숙한 공간일수록 소리를 의식하지 않게 되고, 소음으로만 분류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상에서 조금만 감각을 바꾸어 소리에 집중하는 순간, 평범한 공간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듣는 감각’을 다시 깨웠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처음 소리를 채집하려고 다녔던 날들에는 마치 눈을 감고 세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시각이 줄어들자 청각이 살아났고, 들리지 않던 작은 소리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전철의 공기 압축음, 자전거 체인이 돌아가는 미세한 쇳소리, 횡단보도 신호음의 고저차 등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세계로 느껴졌다. 이러한 감각의 전환은 단순한 청각 훈련을 넘어, 삶을 더 깊이 있게 체험하게 해주었다.

또한 소리를 채집하는 행위는 자신과 도시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으로도 기능했다. 일상에 쫓겨 무심히 지나치던 거리도, 어떤 소리를 찾고자 걸으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분주한 날에는 소리도 조급하게 들리고, 차분한 날에는 소리조차 온화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도시의 소리는 결국 내면의 감정과도 맞닿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도시의 숨겨진 소리를 기록하는 것은 단순한 취미 이상으로, 감각의 훈련이자 기억의 재구성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도시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 리듬은 분명히 소리로 기록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도시의 모퉁이를 돌며 귀를 기울인다. 어쩌면 다른 이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러나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하나의 음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 소리가 말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듣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