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멈춰선 공간, 폐공장에서 첫 발을 내딛다
도시의 번화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종종 거대한 철문과 녹슨 구조물이 웅크린 채 남아 있는 버려진 공장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이 공간은 겉보기에는 그저 허물어져가는 건물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 전의 산업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나는 이런 폐공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거대한 기계들이 멈춘 채 정지된 시간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첫 탐험은 인천의 한 오래된 제철소였다. 입구는 반쯤 무너진 벽으로 가려져 있었고, 곳곳에 덩굴식물이 철골 구조물을 감싸고 있었다. 한때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땀 흘리며 철을 녹이고 제품을 생산했을 그 공간은 이제 먼지와 녹, 침묵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여전히 기계의 울림, 발걸음 소리, 무전기 잡음이 잔향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이러한 공간을 탐험하는 일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는다. 그것은 한 도시의 성장과 쇠퇴, 사람들의 노동과 삶, 그리고 기술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처럼 빠른 산업화와 도시 개발이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이러한 공간들이 어느 순간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나는 이 공간들을 기록하고 남기는 일을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시대의 증언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기계실 한켠에는 사용 설명서가 여전히 붙어 있었고, 점검일자가 적힌 종이는 색이 바래 있었지만 선명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누군가의 손길과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며, 이 공간이 단순한 철과 시멘트 덩어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라는 확신이 들었다. 시간이 멈춰 선 듯한 이 장소는, 누군가의 젊은 시절과 땀방울, 그리고 산업화의 상징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었다.

사진에 담긴 이야기, 잊힌 시간을 복원하다
버려진 공장을 기록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카메라다. 낡은 벽면의 갈라짐, 기계의 녹슨 곡선, 바닥에 떨어진 공구 하나까지도, 사진은 그것을 단순한 피사체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담아낸다. 나는 탐방할 때마다 카메라를 챙기고, 가능한 자연광만으로 찍는다.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그 장소의 ‘진짜 얼굴’을 포착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공간은 부산 사하구의 옛 제분공장이었다. 1960년대부터 가동되던 그곳은 이제 철문이 닫히고 사람도 드나들지 않는 곳이 되었지만, 공장의 내부에는 아직도 밀가루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햇빛이 철제 창문을 뚫고 들어와 기계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순간, 마치 시간이 되돌려진 것 같은 감각이 찾아왔다. 나는 셔터를 누르며 ‘이 장면은 누구의 기억일까’ 하고 자문했다.
사진을 통해 남긴 기록은 단지 공간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인간의 흔적을 되새기게 만든다. 벽에 그려진 낙서, 이름이 새겨진 목재 상자, 책상 서랍에 남아 있던 메모지. 모든 것이 ‘이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그것이 바로 산업 유산이 지닌 힘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기록물로서의 가치 외에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 무너진 콘크리트 속에서도 여전히 제 기능을 유지하는 기계나 구조물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기술력과 열정이 느껴진다. 반대로 방치된 채 폐기되어가는 현장을 보면, 산업화의 그늘 속에 잊힌 이들의 노고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그런 양면성을 사진으로 함께 담고 싶었다.
사진 한 장은 결국 한 순간을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다시 되살리는 일이다. 내가 찍은 수백 장의 사진 속에는 단지 공간만이 아니라, 그곳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시간도 함께 남아 있기를 바란다.
산업 유산을 보존하는 또 다른 방식, 글로 남기는 기록
사진이 시각적 증거라면, 글은 감정과 해석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나는 탐방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그 장소에서 느낀 감정, 떠오른 기억, 그리고 자료를 통해 알게 된 정보를 종합해 글로 남긴다. 이 글들은 단순한 일기나 탐방기록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해석과 비판, 애정을 담은 하나의 기록물이다.
예를 들어 대전 외곽의 한 방직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은 한때 여성 노동자들의 숙소와 식당, 유치원까지 갖춘 자급자족형 공장이었지만, 지금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탐방 당시 나는 공장 근처에서 자란 한 중년 여성을 인터뷰할 수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이곳에서 일하며 가족을 먹여살렸다고 회상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폐허 속에 울려 퍼졌던 웃음과 노래, 울음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글을 쓰는 과정은 기억을 정리하는 동시에, 그 공간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단순히 버려진 곳이 아니라, 한 시대의 중심이었던 장소, 한 가정의 생계가 시작된 공간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나는 이러한 글을 통해 사람들이 산업 유산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길 원한다. 무너진 벽 속에서 가치를 찾고, 녹슨 기계 속에서 미래를 상상하길 바란다.
또한 이러한 기록은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중요한 문화 자료가 된다. 재개발이나 철거로 인해 흔적 없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이 공간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억하고, 존중해야 한다. 나는 글을 통해 그 목소리를 대신 내고 싶다. 단지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듣고자 한다.